함께자라기를 읽고
나는 지금, 함께 자라고 있는가?
2026년 상반기는 회사 생활과 업무에 적응하느라 바쁘게 보냈다. 회사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성장도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맡은 일을 해내고, 시간이 쌓이면 실력도 함께 늘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가 맡은 업무는 대부분 레거시 프로젝트를 점진적으로 마이그레이션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이 일을 성장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기술 스택을 도입하거나 처음 접하는 기술을 배우는 경험만이 성장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업무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배우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퇴근 후 따로 공부를 해야만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자라기』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바뀌었다. 책은 성장이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계속 배우고 개선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그 내용을 읽으며 내가 해왔던 업무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회사는 오랫동안 운영된 레거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 시스템을 이해하고, 운영 환경을 고려하면서 조금씩 구조를 개선하고 마이그레이션하는 과정은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배움을 준다. 처음에는 단순한 유지보수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지금은 실무에서만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이런 고민과 결정들을 대부분 혼자 해결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왜 이런 구조를 선택했는지,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더 나은 방향은 무엇인지 팀과 충분히 이야기하지 못했다. 책에서 말하는 '함께 자라기'는 혼자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경험과 피드백을 통해 배움을 넓혀가는 과정이라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 앞으로는 업무를 혼자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팀원들과 더 많이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보고 싶다.
함께 자라기 위해 고민해야 할 것들
책 제목처럼 함께 자란다는 말은 좋아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꽤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자라려면 먼저 내가 모르는 것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질문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피드백을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또 내가 아는 것을 설명할 때도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해야 한다.
팀도 마찬가지다. 좋은 팀은 단순히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안전하게 꺼낼 수 있는 곳에 가깝다. 문제를 발견했을 때 숨기지 않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방향이 틀렸다고 느꼈을 때 멈춰서 다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몇 가지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
나는 피드백을 잘 받고 있는가?
나는 내 생각을 충분히 공유하고 있는가?
나는 동료가 질문하기 쉬운 사람이 되고 있는가?
우리 팀은 틀렸다는 말을 해도 괜찮은 분위기인가?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배우는 과정을 생략하고 있지는 않은가?
함께 자란다는 건 단순히 사이좋게 일한다는 뜻은 아닌 것 같다. 불편한 질문을 피하지 않고, 서로의 시행착오를 팀의 학습으로 바꾸는 일에 더 가깝다.
제품을 잘 만든다는 것
책을 읽으면서 애자일도 조금 다르게 보게 됐다.
예전에는 애자일을 스프린트, 회고, 데일리 미팅 같은 방법론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애자일은 제품을 잘 만들기 위한 태도에 가까웠다.
좋은 제품은 머릿속에서 오래 고민한다고 저절로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것이 실제 사용자에게도 좋은지는 해봐야 안다. 만들기 전에는 그럴듯해 보였던 기능도 막상 써보면 불편할 수 있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 부분이 오히려 사용자에게 중요할 수도 있다.
그래서 빠른 피드백이 중요하다는 말이 와닿았다. 완벽한 답을 한 번에 찾으려 하기보다, 작게 만들고, 빨리 보여주고, 반응을 보고, 다시 고치는 과정이 제품을 조금씩 더 낫게 만든다.
개발자는 구현에 몰입하다 보면 "잘 만들었다"와 "쓸모 있다"를 헷갈리기 쉽다. 코드가 깔끔하고 구조가 좋아도 사용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제품으로서는 부족하다. 결국 중요한 건 더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자주 배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AI 시대에 우리는 함께 자랄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AI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요즘은 AI 덕분에 코드를 훨씬 빠르게 작성할 수 있다. 보일러플레이트도 금방 만들고, 테스트도 뽑아주고, 리팩토링도 도와준다. 예전보다 더 많은 기능을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된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더 많은 코드를 만들고 있는 걸까, 아니면 더 많은 가치를 만들고 있는 걸까.
AI가 실행을 도와줄수록 사람은 더 잘 판단해야 한다. 무엇을 만들지, 왜 만들어야 하는지, 이게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지 확인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에게 남아 있다. 오히려 코드 작성이 쉬워질수록 잘못된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갈 위험도 커진다.
함께 자라는 방식도 달라질 것 같다. 이제는 단순히 누가 더 코드를 잘 짜는지보다, 누가 더 좋은 질문을 던지는지, 누가 더 빠르게 피드백을 모으는지, 누가 도구를 이용해 팀의 학습 속도를 높이는지가 중요해질 수 있다.
AI 시대에도 함께 자라려면, 도구를 잘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가 무엇을 배웠는지 공유하고, 어떤 시도가 실패했는지 남기고, 더 나은 판단을 팀 안에 축적해야 한다. 그래야 AI가 만든 속도가 개인의 생산성으로 끝나지 않고, 팀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함께 자라는 개발자
책을 다 읽고 나서 남은 질문들은 너무 단순했다.
나는 지금 잘 자라고 있을까? 그리고 내 옆의 사람들과 함께 자라고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여전히 바쁘게 일하는 걸 성장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고, 피드백보다 구현을 먼저 생각할 때도 많다. 그래도 이 책을 읽고 나서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성장은 일을 많이 했다는 사실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내가 한 일을 돌아보고, 피드백을 받고, 다음 행동을 바꾸는 과정에서 생긴다.
앞으로는 더 자주 묻고, 더 빨리 공유하고, 더 기꺼이 고쳐보고 싶다. 혼자 잘하는 개발자가 아니라, 함께 자랄 수 있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