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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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다사다난했던 2025년을 돌아보자

들어가며

2025년은 다사다난한 한해였다. 그중 큰 변화는 퇴사, 새로운 환경, 이직. 이 과정에서 일년간 어떤 배움과 아쉬움이 있었는지 돌아보자.

퇴사

나는 퇴사를 했다. 약 6년 동안 창업을 함께했던 팀을 떠났고 스스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항상 주변 사람들은 “왜 창업한 회사를 그만두게 됐어?” 라는 질문을 나에게 묻곤한다.

늘 거창한 이유를 붙여 설명을 했지만(새로운 도전이니 뭐니..)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빨리 도망치고 싶었고 몸과 마음이 조금 많이 지쳐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늘 스타트업의 J커브를 믿었다. 힘들어도 “지금은 버티는 구간이다”라고 스스로를 설득했고, 늘 그런 구간이 오면 우리팀은 잘 버텨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열정의 불씨가 꺼져버렸던것 같다. 더는 같은 방식으로 나를 밀어붙일 수 없었다.

반복되는 실패, 방향이 선명하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 사람에 대한 신뢰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우리는 뭘 해도 또 실패할 거야.” 라는 무의식이 생겨버렸던것 같다. 그리고 나는 경험이 없어서 이런거고 더 큰곳에서 경험을 쌓고 싶다고 스스로 타협을 했다.

결론적으로 팀을 나오게 된건 잘한 선택인것 같다. 그 끝을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많이 남지만 아무래도 내가 떠나는 것이 서로에게 더 도움이 될것 같은 결정이였다.

기회를 못 잡았던 걸 수도 있고, 운이 따르지 않았던 걸 수도 있다. 사업은 실력만으로는 부족하다. 타이밍과 시장의 흐름, 예상 못 한 변수들이 한꺼번에 맞아떨어져야 한다. 우리는 그 조합을 끝내 만들지 못했다.

창업 초창기에는 세상을 놀라게 할 거라는 순수한 마음이 있었고, 그 열정을 가진 청년들이 모여 글로벌 진출 및 여러 투자들도 받고 법인회사까지 설립했으니 말이다. 그땐 정말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무모함이 아니라 그런 믿음이 있었던것 같다.

6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사진으로 나마 조금 정리해보면 좋을것 같아서 기록을 남겨보자

우연히 좋은기회로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전시회에 참가하게 되어 우리가 이런일을 하는 사람이다라는걸 사람들에게 처음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기회가 팀의 시작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것 같다.

학교 산학협력관에서 월세 30만원인가 얼마를 내고 첫 사무실에서 오순도순 일을 했었다.

이때 정말 재밌게 일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바로 회의를 진행하고 검증하고 PoC를 만들고, 그리고 이땐 돈도 없어서 밥솥을 하나 구해와서 우리끼리 밥도 해먹으면서 지냈다.

와디즈 펀딩 준비하느라 밤새면서 제품을 조립하고 포장했었다. 이때도 정말 재밌었다.

첫 펀딩에 성공하여 드디어 사무실을 넓고 쾌적한 곳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책상도 새로 사고 PC도 새로 사고 이제 나름 회사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이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하고 크게 성취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이 사무실에서 진짜 본격적으로 제품을 개발 했었던거 같다. 나는 이 제품의 코어 모듈을 개발했는데 주로 Adobe와 통신할 수 있는 모듈들을 만들었고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영상편집, 사진편집, 일러스트레이터, 포토샵 등등 툴들을 공부했다.

그 도구들과 우리 제품을 연동하기 위해 , Lua, C#, TypeScript 등을 활용해서 코어 모듈을 만들어 우리 서비스에 붙이는 작업들을 했다. 이때는 영상, 편집 등의 도메인을 전혀 알지 못했어서 밤낮 유튜브를 보며 용어공부를 하며 제품을 개발했었는데 그게 너무 재밌었다.

정말 많은 국내박람회를 다녔다. 2년만에 박람회를 가면 우리를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IBK창공, TIPS등에 선정되었고, 점점 합류하는 팀원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공유오피스에 입주하여 비가오는 날엔 광안대교에 무지개가 보이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아름다운 야경을 보면서 일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콘텐츠 크리에이터 시장이 급 성장 하면서 우리 제품들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운이좋게 CES에 제품을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래서 무작정 세계 무대를 경험하기 위해 미국 라스베가스로 날아갔다.

CES는 전체적으로 너무 좋았던 기억만 남아있다. 전 세계의 이목을 한 곳에 받는 시간과 공간이어서 기술 트렌드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 만나볼 수 없었던 고객들이나 바이어들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배울 수 있었다.

아직 기억에 남는건 17살이지만 20살로 나이를 속여 일을 하러온 통역사 애니ㅋㅋ 놀랍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담대함이 인상적이었다. 질문을 던지는 방식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남달랐다.

그때 나는 ‘이 친구는 어딜 가도 잘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쯤 어디에 있든, 분명 자기 길을 멋지게 만들어가고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씨애이랩(뉴라이즌)의 이승욱 대표님. 부산에서 클린테크 기업을 운영하고 계신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배울 점이 많고 친근한 형 같은 분이었다. 미국에 있는 내내 우리를 잘 챙겨주셨고, 밥도 많이 사주시고, 좋은 말씀도 아끼지 않으셨다. 낯선 곳에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그 배려가 꽤 큰 힘이 됐다.

오랜만에 생각나서 찾아보니 기사에서 2026년 상장 예정이라는 이야기도 보였다. 역시 사람은 떡잎부터 다르다는 걸 그때 이미 느꼈던 것 같다. 잘 되고 계신 걸 보니 괜히 내가 다 기분이 좋다.

많은 순간들이 있었지만 사진을 다 정리하자고 하니 너무 창업 기록처럼 보일까봐 기억에남는 몇 가지만 추렸다. 이렇게 보니 참 치열하게 20대를 보내왔던것 같다.

이후에 우리는 일본, 중국, 대만, 미국등 세계 시장에 진출했지만 모종의 이유로 잘 되었던 콘텐츠 크리에이터 시장을 떠나게되었고 AI 흐름에 올라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으며 방황했던 시기를 보냈다. 이후로 LG전자와의 PoC, 투자유치 등 계속 의미있는 성과들을 내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이 시간을 “실패”로만 기억하고 싶지 않다. 나는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었고, 의미있는 매출과 성과를 냈으며 고객의 깊은곳 까지 파고들어 문제를 해결했고, 세계 무대도 밟아봤다. 좁은 사무실에서 밥을 해 먹으며 열정 하나로 하루를 살았던 날들로 시작해서 세계시장 진출까지 내 인생에서 다시 없을 만큼 뜨겁고, 또 순수했던 장면들이다.

하지만 더 이상 불타지 않는 불씨를 억지로 흔들어 살려내는 대신 잠시 내려놓고 다시 숨을 고르는 선택을했다. 끝을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그만큼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결정이기도 했다.

창업은 내 20대를 가장 치열하게 만들었고 나를 가장 빠르게 성장시켰다. 동시에 내가 얼마나 쉽게 소진되는 사람인지도 알려줬다. 나는 이 시간을 통해 내가 어떤 환경에서 살아나고, 어떤 환경에서 무너지는지를 배웠다. 그게 지금의 나에겐 꽤 큰 자산이다.

후회도 미련도 다 남아있지만 결국 나는 이 시간을 고맙게 기억하고 싶다. 함께했던 사람들, 우리를 믿어줬던 고객들, 어설펐던 시절의 나까지. 고생많았다.

방황

퇴사하고 나서 한동안은 방황했다. 항상 “다음 할 일”이 늘 눈앞에 있었는데, 막상 그만두고 나니 내가 뭘 잘하는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할지 잘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웃긴 건 몸은 쉬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데 마음은 계속 초조했다는 거다. 쉬고 있으면 계속 뒤쳐지고 있는것 같고, 불안했다. 그래서 무작정 자격증을 따고 도서관에서 한두달 박혀 살았던 것 같다.

여행 및 휴식

쉴꺼면 좀 제대로 쉬자 라는 생각에 미친듯이 친구들이랑 놀고 술도 많이 먹고 여행도 많이 다녔다. 4~5월달에는 진격의 거인에 빠져서 친구집에서 다같이 진격의 거인을 보면서 맨날 밤새고 술먹고 놀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였다.

이때 친구들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정말 많이하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다시한번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다양한 활동

25년도에는 정말 다양한 활동들을 많이 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임팩트 있는 몇 가지를 정리해보면

패스트캠퍼스 강의 촬영

퇴사하고 나서 시간이 남아돌았다. 그래서 나는 그때 바이브 코딩에 푹 빠졌다. 생각나는 거 있으면 대충 만들어보고 바로 결과가 나오고, 그걸 또 조금 바꿔보고 하면서 이것저것 막 많이 만들었었다.

근데 사람들이 만드는 바이브 코딩 결과물들이 생각보다 다 비슷해 보였다. 바이브 코딩으로 새로운 걸 해볼 수 없을까? 다들 비슷한 걸 만들고 있으니 나는 좀 다른 방향으로 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떠올린 게 인터랙티브 웹이었다. 코드 한줄 안치고 화려한 인터렉티브 웹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진짜 바이브 코딩으로만 인터랙티브 웹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무작정 막 만들었다.

Three.js도 만져보고, framer, gsap, canvas 등등 여러가지를 공부해보며 바이브코딩에 활용했다. 근데 어느정도 만들다보니 이게 가능하단걸 깨달았다. 그렇게 재미가 들려 미친듯이 인터렉티브 웹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연히 내 결과물을 패캠에서 봐서 연락이 왔다. 강의 촬영 제안이었는데 처음엔 너무 부담이 컸다. 내가 누굴 가르칠 정도로 정리된 사람이었나 싶었고, 솔직히 뭘 알려줘야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런 인터렉티브 웹을 어떻게 제작했는지 과정만 보여주어도 될것 같다고 부담스러워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뭐… 지금 하는 것도 없는데 한번 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했다.

준비를 하면서 느낀 건,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달하는건 남을 위해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를 위해 하는 작업이다. 말로 설명하려면 내가 진짜로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애매하게 알고 있던 건 설명하면 안되니 더 꼼꼼히 공부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때 인터렉티브 웹에 대해서 매우 깊게 공부했고 이때 UX 엔지니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최근에는 흑백요리사2에서 ‘삐딱한 천재’라는 요리사를 알게되었는데 그 사람 보면서 나랑 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내가 천재라는 말은 절대 아니고 삐딱한 쪽 얘기다. 그 사람은 남들이 다 정해놓은 방식대로 안 하고, 굳이 한 번 더 비틀어서 자기만의 시도를 한다. 다들 같은 걸 할 때 혼자 다른 걸 해보는 태도. 근데 그게 요즘 더 필요한 자세 같았다. 바이브 코딩도 그렇고, AI도 그렇고, 이제는 결과물을 “빠르게” 만드는 건 점점 평준화될 텐데, 결국 차이는 “뭘 하느냐”보다 “어떻게 차별점을 만드느냐”에서 나오는 것 같다. 남들이 안 가는 쪽을 한 번 더 기웃거리고, 이상한 질문 던지고, 뻔한 결론으로 안 가려고 고민하는 그런 태도가 또다른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걸 배웠다.

새로운 경험은 늘 재밌고, 늘 인사이트를 준다. 그리고 나는 아직 남들이 다 가는 길에서 살짝 옆으로 빠져서 “이거 해보면 재밌지 않을까?” 같은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보고싶다.

항해플러스 6기

항해플러스 6기를 시작했다. 원래 부트캠프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커리큘럼이 좋아보여서 신청하게 되었다. 그리고 놀면 뭐하겠니 생각으로 이거라도 제대로 해보자 생각해서 신청했는데 이 선택이 내가 한 선택중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얻은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기술적으로도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창업을 했을때도 계속 개발을 해왔지만 솔직히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 같다. 밖에 나와서 내 실력이 어떤지, 내가 그동안 공부해온 것들이 의미가 있었는지 스스로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10주간 과제를 진행했는데 정말 난이도가 있었지만 기초를 더 탄탄하게 다질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총 10개의 주차에서 8개의 BP를 받고 무사히 수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일 좋았던 건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한 공간에서 마음을 맞는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게 참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동료가 생겨서 너무 좋다. 같은 문제를 두고 같이 고민하고 “이건 왜 이렇게 했어?” 같은 질문을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그런 그런 분위기 자체가 나한테는 꽤 큰 에너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들 그냥… 좋은 사람들이다.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도와주고, 또 각자 자리에서 꾸준히 해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나도 자연스럽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그래서 요즘은 글쓰기 모임(똥글똥글), 스터디 같은 활동도 계속 하면서 일부러 새로운 환경에 나를 던지고 있다.

퇴사 이후에 한동안 식었던 내 개발 열정을 다시 태운게 있다면, 나는 항해플러스라고 말할 것 같다. 2025년의 많은 선택들 중에서 가장 후회없는 선택이다!

테오콘 스태프 활동

테오콘은 항해플러스 하면서 코치님으로 테오를 알게 된 게 시작이었다. 그러다 스태프 모집 글을 봤는데 딱히 거창한 이유가 있던 건 아니고 그냥 이런 건 한 번쯤 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신청했다. 준비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짧았지만 길었고(?) 이게 될까? 생각했는데 어떻게 날짜가 다가오니 하나둘씩 진행되고있는데 정말 신기했다. ㅋㅋ

준비 기간 동안에는 테오콘 홈페이지를 제작했는데 초반에 빠르게 틀을 잡고 배포까지 진행했다. 아마 급하게 만들어서 코드가 좀 더러웠을 텐데 잘 참고 정리해준 루시와 제이슨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나는 온에어팀의 촬영팀으로 컨퍼런스 현장 촬영이랑 세션 녹화를 맡았다. 촬영은 그냥 카메라 들고 잘 찍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까 그런 느낌보다는 체크할 게 많았다. 배터리, 소리, 화면 구도, 사람, 동선, 세션 시간 같은 것들이 계속 신경 쓰였고 한 번 놓치면 다시 주울 수 없는 것들이라 계속 긴장하면서 움직이게 되었다. 현장에서 변수가 생기는 것도 당연했고 그때마다 그냥 그 자리에서 맞춰가며 처리했다. 현장에서는 진짜 정신없이 시간이 빨리갔던것 같다. 오랜만에 이렇게 몰입하면서 무언가를 해본 좋은 경험이였다.

아쉬운 점도 있다.테오콘은 엘리스랩에서 진행했는데 공간이 Zone 3구역으로 나뉘어 있어서 동시 송출할 때 문제가 생겼다. 미리 테스트를 하긴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더 꼼꼼하게 여러 케이스로 확인해봤어야 했다. 라이브로 송출이 되다 보니 그 문제 때문에 세션 진행이 조금 지연됐고 기다리던 사람들한테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끝나고 나서는 계속 좀 더 꼼꼼하게 체크할걸 하는 생각이 남았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무사히 끝났고 세션녹화와 사진들이 잘 나와서 뿌듯했다. 무엇보다 같이 준비한 사람들이 다들 끝까지 책임감 있게 준비해서 그 안에 섞여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경험이었다.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있으면 참여해보고싶다.

항해플러스 7기 학습메이트

항해플러스 6기를 하면서 정말 많은것을 얻고 갔다. 그래서 7기의 학습메이트를 신청해 내가 먼저 경험했던 것들을 조금이나마 공유해주며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배워나가고 싶었다.

  1. 비슷한 연차에 비슷한 고민들을 하는 사람들끼리 같이 고민을 나눠보고 싶었고
  2. 나도 이제는 누군가의 학습을 ‘돕는 역할’을 해보면서 더 성장하고 싶었고
  3. 무엇보다 6기에서 내가 받았던 에너지를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전달해보고 싶었다

나는 모두를 잘 챙기는 학습메이트가 되고 싶었는데 7기를 시작하고 나서 2주차 쯤 이직을 하게 되어 현실적으로는 내가 생각한 만큼 팀원들을 많이 챙기지 못했다. 그래서 너무 아쉬움이 많이 남기도하고 우리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팀은 팀이 서로를 챙기는 팀이 되어가는걸 보면서 좀 뿌듯하기도 했다. 우리팀 사람들 뿐만 아니라 7기 사람들 전체가 여기서 많은걸 얻어갔길 바란다!

물류 스타트업으로 이직

물류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성공했다. B2B 회사는 어떻게 비즈니스를 하는지 예전부터 궁금했었고 또 물류라는 복잡한 도메인 아래에서 내가 도전적으로 해볼 수 있을 일들이 많을 것 같아 입사하게 되었다.

회사에 해야할 일들이 정말 많은 것 같은데 여러모로 많은 기여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설레기도 한다!!


아쉬운 점

올해는 큰 변화가 많았다. 퇴사하고 오래 쉬었고 이직에도 성공하며 서울로 이사를 왔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안 한 것들도 꽤 선명하게 남았다. 독서도 투자 공부도 운동도 생각보다 많이 못 했다. 변명을 하자면 시간이 없었다기보다는 내 에너지가 이거까지 다 챙기지 못했다. 26년에는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내 목표를 잘 달성해보자.

읽고 싶었던 책이 많았는데 실제로는 책을 거의 못 읽었다. 그래서 독서하는 시스템을 만드려고 독서모임도 들고 짭레바리라는 독서 인증 모임도 시작하게 되었다. 요즘은 출근길에 밀리의 서재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하루에 20분 30분정도 독서를 하는 습관을 다시 만들어보고있다. 올해는 20권 정도 목표를 잡고 책을 읽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투자 공부, 경제공부는 늘 취미처럼 해왔는데 25년도에는 그 관심도가 떨어졌던것 같다. 시장에서 기회도 많았지만 잡지 못해서 좀 아쉽다 ㅎㅎ

26년도에는 다시 미국주식사관학교 컨텐츠 꾸준히 읽고 경제뉴스 스크랩도 다시 시작하자. 그리고 나스닥 말고 코스피 코스닥도 공부를 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체력을 더 길러야겠다. 러닝과 헬스를 꾸준히 시작해서 건강한 몸과 체력을 만들자

목차